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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양극화에 경종 울린 교황

입력 2025-09-19 0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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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지난 5월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이 첫 언론 인터뷰에서 사회 양극화 심화의 원인으로 소득 격차 확대를 꼽아 눈길을 끌었다. 교황은 이달 14일 보도된 가톨릭 매체 '크룩스'와의 인터뷰에서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를 거론하며 일반 노동자와 CEO 간 소득 격차 문제를 언급했다.




교황 레오 14세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제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노동자 계층과 최고 부유층의 소득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60년 전의 CEO들이 노동자 임금의 4∼6배를 벌었다면 최신 수치에 따르면 지금은 (CEO의 임금이) 노동자 평균의 600배"라며 "일론 머스크가 세계 최초의 '조만장자'가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테슬라 이사회가 최근 머스크에 대해 테슬라 전체 보통주의 12%에 해당하는 4억2천374만3천904주를 2035년까지 12단계에 걸쳐 지급하는 성과 보상안을 의결한 걸 거론한 것이다. 테슬라가 시가총액 목표를 달성하는 등 조건이 모두 갖춰지면 보상안의 가치는 최대 9천750억달러(약 1천359조원)에 달한다. 교황은 "만약 이것(부 축적)이 유일한 가치라면 우리는 정말 큰 문제에 봉착한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교황이 어떤 자료를 보고 'CEO의 임금이 노동자 평균의 600배'라고 언급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국 최대 노조인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미국노총)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S&P 500 기업 CEO들의 지난해 평균 총보수는 1천890만달러인데 이는 노동자 중위소득의 285배나 된다. 한해 전 268배보다 CEO와 노동자 간 소득 격차가 더 벌어졌다.


미국 출신으로 최초로 교황에 즉위한 레오 14세는 노동권과 사회 정의를 강조한 레오 13세 교황(재위 1878~1903)의 정신을 계승해 교황 명을 지었다. 즉위 당시 교황청 대변인은 "레오 14세라는 교황 명의 선택은 레오 13세의 회칙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새로운 사태)으로 시작된 현대 가톨릭 사회 교리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라고 말했다.


레오 13세가 1891년 반포한 '레룸 노바룸'은 교회 역사에서 최초의 사회교리 문헌으로 꼽힌다. 이 회칙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겪은 서구 사회에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와 이를 위한 국가의 의무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사회교리 문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레오 14세가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한 양극화 문제도 이 회칙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 회칙의 32장은 '노동자의 적정 임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임금은 노동자가 검소한 생활, 말하자면 최소한의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미흡해서는 안 된다. 만일 노동자가 궁핍 때문에 강요되거나 더 큰 악이 두려워서 더욱 힘든 조건들을 받아들인다면, 또 원하지도 않는데 고용주와 기업주가 부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은 폭력을 당하는 것이다."


2011년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반월가 시위는 금융권의 탐욕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사회운동으로 확산한 경우다. 그때도 갈수록 커지는 CEO와 직원 간 보수 격차가 주된 시위 촉발 요인이었다. 극단적인 계층 간 소득 격차는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오고 계층 간 갈등을 키울 수밖에 없다. 나아가 소득계층 이동성이 낮아지면 그 사회는 역동성을 잃고 발전의 동력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도 CEO와 직원 간 연봉 차이가 상당하다. 올 3월 발표된 자료(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평균 격차가 15배가 넘고 기업별로는 106배 차이가 나는 곳도 있었다. 정부가 지난 달 발표한 경제 성장전략과 예산안에는 기술 발전 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양극화 심화 대책은 찾기 어려웠다. 저성장 기조를 반전시키기 위한 성장이 강조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겠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사회 이동성 개선도 계속 미룰 순 없다.


bo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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